ㆍ운영자가 중국에서 느끼는 중국 난계의 흐름과 특징, 현재의 중국 상황에 대한 느낌, 등등을 리포트 형식으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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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난계의 흐름과 한국 춘란의 중국 시장 진출 방향성 제고 방안.
Ⅰ. 서 언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화훼공판장의 지원으로 고려대학교 생명공학부에서 진행하는 '한국 춘란의 산업화ㆍ대중화를 위한 기초 기반 조사 및 발전방안' 이라는 연구 과제와 관련하여 몇 달 전부터 중국 난계(蘭界)와 관련한 원고를 부탁 받고 미루고 있다가 막상 마음을 다져 잡고 글을 작성하려니 작성할 원고 내용 보다는 난(蘭)과 더불어 함께하며 지나간 37년간의 발자취부터 봄날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듯 아련하게 떠오른다.
필자는 1979년부터 난을 처음 취미로 접한 후 현재에 이르다 보니 벌써37년이란 세월 속에 난(蘭)을 가까이 하는 가운데 사업을 한답시고 중국과 수교 바로 전인 1992년 2월 달 중국 땅에 첫 발을 디디면서부터 현재까지 중국이 제2의 고향처럼 느껴질 정도로 현지에서 삶의 터전을 마련하며 무역업은 물론 현지 법인 대표, 지사장 등등 현지에서 IMF까지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다양한 경험을 쌓는 가운데 어느새 24년이란 세월이 지나가고 있다.
이러한 생활 속에서도 중국에서 어떤 사업을 하던, 어느 장소에 가던지 시간만 나면 늘 난(蘭)이 있는 곳을 찾아 다니는 가운데 어찌 보면 한국 내에서 난인(蘭人)으로 활동한 시간보다도 중국에서 더 긴 시간 동안 중국 난인들과 소통하며 교류하다 보니 결국 2013년 모든 사업을 제쳐두고 2,640㎡의 부지를 마련, 전용 면적 660㎡의 난(蘭) 전문 배양용 유리 온실을 건립하여 결국 취미에서 사업으로까지 이어져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있는 현실이다.
한국에서 13년간의 취미 생활에 이어 중국에서 21년간의 취미 생활을 합하여 33년간 순수한 취미로 즐기던 난(蘭), 또한 2000년 3월부터 난(蘭) 전문 웹사이트를 개설하여 현재까지 17년 동안 운영하면서 얻은 다양한 정보와 인맥을 발판으로 하여 이젠 먹고 사는 생존의 수단인 전업으로 발전하여 타국인 중국 현지에서 난 농사꾼 겸 도매상으로 활동하고 있는지가 벌써 4년째에 접어 들어 현지화하는데 온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필자의 이런 현지 경험을 통하여 얻은 내용을 토대로 지나간 16년여 동안 월간 ‘난과 생활, 난세계’를 비롯하여 중국의 여러 난 잡지를 통해 필자가 발표 했던 내용들을 총체적으로 규합하여 ‘중국 난혜(蘭蕙)의 역사적 유래와 의미’, ‘중국 난계의 흐름과 변화’, ‘중국 난(蘭) 전시 문화’ 소개와 더불어 ‘한국 춘란의 중국 진출 방향성 제시’로 주제를 나누어 서술하고자 한다.
서술에 앞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애란인(愛蘭人), 애호가(愛好家)’ 등등의 호칭을 본 필자는 중국의 상황을 고려하여 ‘난인(蘭人)’으로 표기한다, 그 사유는 본문에 언급되겠지만 현재의 중국은 대부분 수익성 창출을 위하여 ‘난’을 재배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서 한국도 이와 흡사하지만 예전과 달리 순수 취미로 즐기는 자가 적기 때문에 ‘애란인, 상인, 재배자’ 등등으로 분류하기가 애매모호한 상태이기에 통칭 ‘난인’으로 표기하고자 한다.
모든 내용은 가능한 객관적으로 서술하겠지만 일부 내용은 필자의 주관적인 의견이 많이 반영되어 있기에 여타 다른 난인들과 생각을 달리할 수도 있다는 점 많은 양해를 구한다.
본 내용에 들어가기에 앞서 간략하나마 ‘난과(蘭科 Orchidaceac)’와 ‘중국 난혜(蘭蕙)에 대한 유래와 의미’를 소개하고자 한다.
1. 난과(蘭科 Orchidaceac) 식물은,
전세계적으로 대략 7백여 속(屬) 2만여 종(種)이 사막지역과 북극, 남극지역을 제외한 열대지방과 아열대 지방의 넓은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이중 중국에만 서식하는 난과(蘭科) 식물은 166속(屬)에 1,019 종(種)이라 할 정도로 풍부한 천혜의 자원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 기생란(氣生蘭)이 80%를 차지하며, 20%정도가 뿌리를 땅속에 두는 지생란(地生蘭)으로서 우리는 흔히 이러한 난과 식물을 편의상 ‘동양란’과 ‘서양란(또는 양란)’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난인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동양란(Cymbidiums)은 한국을 비롯한 일본, 중국, 타이완에서 자생하는 난초를 의미하고, 그 외의 지역에서 자생하는 난초는 서양란(팔레높시스, 덴디로비디움, 카틀레야 등등)으로 지칭하지만 이런 분류는 학술적으로 통용되는 분류가 아니고 편의상 일본 난인들이 분류한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2. ‘난(蘭)’과 ‘혜(蕙)’의 역사적 유래와 의미.
수 많은 난초(蘭草) 중 중국에서 자생하는 지생란(地生蘭), 특히 우리가 통칭적으로 난(蘭)이라 하는 전통 품종류를 학술 용어와는 별도로 중국의 난 관련 고전 서적에서는 난과(蘭科) 식물 중 Cymbidum속(屬)에 속한 품종의 화경에 달린 꽃의 숫자에 따라 크게 ‘난(蘭)’과 ‘혜(蕙)’로 구분하기에 조금이나마 중국란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듯 싶어 먼저 그 용어와 의미 사용에 대하여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자료를 참고하여 유래부터 살펴보고자 한다.
1) ‘난(蘭)’이라 함은,
일반적으로 Cymbidum속(屬) ‘일경일화(一莖一花)’, 즉, 화경(花莖) 하나에 꽃 한 송이를 달고 있는 품종을 뜻 함이다. 흔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송매(宋梅), 왕자(汪字), 만자(万字), 집원(集圓) 등 대부분의 중국 춘란 전통 품종들과 한국과 일본 춘란들이 여기에 속한다.
‘난(蘭)’이란 단어는 기원전 6세기경 공자(孔子. BC522~BC479년)가 살던 노(魯)나라에서 전해져 오는 3,000여 편의 옛 시(詩)를 근거로 하여 중복된 것을 제외하여 305편으로 편찬한 ‘시경(詩經)’ 속에 소개 된 두 편의 시(詩)에 등장하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군자(君子)’의 의미는 보이지 않고 ‘구애’ 또는 ‘아름다운 모습 표현’의 의미로 여겨진다. 그러나 ‘공자가어(孔子家語)’를 보면 난(蘭)에 관한 이야기가 3번 나오고 있는데 비로소 이때부터 난(蘭)은 군자(君子)에 비유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난(蘭)의 의미는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BC403~BC221년)를 거치며 문인(文人)이나 묵객(墨客)들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난(蘭)하면 군자(君子)를 뜻하는 대명사처럼 사용되었으며, 특히 북송(北宋)시대의 시인 겸 묵객인 황정견(黃庭堅)의 ‘서유방정(書幽芳亭)’중에 “蘭似君子(난이군자), 蕙有士大夫槪(혜유사대부개)”라고 표현한 내용이 이를 대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현재 우리가 말하는 난(蘭)과 그 시대에 이야기 된 난(蘭)이 과연 식물학상 동종(同種)일 것인지에 의문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많은 가운데, 특히 중국 남송(南宋. 1127~1279년)시대의 주희(朱熹. 1130~1200년)가 저술한 ‘초사변증(楚辭辨證)’을 보면 확실히 다른 식물의 종(種)으로 나타난다고 하였다. 우리가 현 시대에 의미하는 난(蘭)으로 의미를 부여한 시기는 북송(北宋: 960~1126년)시대 중기 이후부터 남송(南宋)시대에 원예적인 측면에서 부각되어 오늘날까지 난(蘭)이란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다만 공자시대부터 근 2천 5백여 년간 빼어난 향기로 군자에 비유되던 난(蘭)이 당말(唐末)에 와서야 비로소 오늘날 식물학적인 난(蘭)을 의미하는 용어로 자리잡았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유래를 더듬어보면 난(蘭)을 완상(玩賞)의 대상으로 여긴 시기는 11세기 중엽인 북송(北宋)시대 중기를 거쳐 남송(南宋)시대에 활짝 꽃을 피우게 되면서 13세기에 들어서 ‘금장난보(金障蘭譜, 趙時庚著, 1233년)’와 송조(宋朝) 시대의 ‘왕씨난보(王氏蘭譜, 王貴學著, 1247년: 정식 명칭은 '건란보建蘭譜')’ 등 난에 관한 여러 책들이 저술되었으며, 문인들 사이에 묵란화(墨蘭畵)가 유행하여 명대(明代)에 이르러 수묵사군자(水墨四君子)로 발전되어 확실한 난(蘭)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2) ‘혜(蕙)’라 함은,
Cymbidum속(屬) ‘일경다화(一莖多花)’, 즉, 하나의 화경(花莖)에 여러 송이의 꽃을 피우는 품종을 의미하고 있는데 이 범주에 속하는 품종들은 일경구화(一莖九華), 사계란, 추란(소심란 포함), 한란, 보세란 등이다. 다만 현재 중국에서 ‘혜란(蕙蘭)’이라 함은 대일품(大一品), 정매(程梅), 관정(關頂)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일경구화(一莖九華)’ 품종을 의미한다.
중국난계(中國蘭界) 역사상 ‘혜(蕙)’라는 단어의 초기 출현은 전국시대(戰國時代) 초국(楚國)의 시인 굴원(屈原, BC340~BC278년)의 ‘초사(楚辞)’에 “既滋蘭兮九畹(기자란혜구원), 又樹蕙之百畝(우수혜지백무)”라는 문장이 나타나는데 여기서 이야기하는 ‘혜(蕙)’는 일종의 향기가 나는 ‘향초(香草)’를 뜻한다고 전해지기에 현재 우리가 뜻하는 “혜란(蕙蘭)이다 아니다”라고 의견이 분분한 상태라 한다.
결국 우리가 혜란(蕙蘭)의 의미로 여기는 ‘혜(蕙)’자(字)는 송대(宋代) 시인 겸 묵객인 황정견(黃庭堅)의 ‘서유방정(書幽芳亭)’중에 “一干一華而香有余者蘭(일간일화이향유여자란), 一干五七華而香不足者蕙(일간오칠화이향부족자혜)”라는 문장에 나타난 것이라 한다. 그 이유는 송대(宋代)에는 춘란을 재배하고 혜란(일경구화)을 식물적 가치로 감상하는 것이 유행이었기에 후대에도 춘란(春蘭)과 혜란(蕙蘭)을 구분할 수 있지만, 앞서 전국시대(戰國時代) ‘초사(楚辞)’에 나타난 향초(香草)의 의미와는 완연하게 구분이 된다고 한다. 이후 더 확실한 구분을 알 수 있는 근거는 청대(淸代)의 ‘제일향필기(第一香筆記, 朱克柔著)’를 보면 난(蘭)과 혜(蕙)의 각기 다른 재배 방법을 나타내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으며, 건륭(乾隆), 가경(嘉慶), 도광년간(道光年間)에 와서는 대일품(大一品), 정매(程梅), 상해매(上海梅), 탕자(湯字) 등의 혜란(蕙蘭, 일경구화) 명품종들이 적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현대에 와서도 난인들에게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는 청대(淸代) 동치년간(同治年間)에 발간 된 ‘난혜동심록(蘭蕙同心錄, 許鼐和著)’을 보면 혜란노8종(蕙蘭老八種, 일경구화 8대 전통품종)에 대한 품종 소개를 하고 있기에 현재 중국에서 의미하는 ‘혜(蕙)’에 대한 분류를 정확히 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후대인 중화민국 12년(1923년) 오은원(吳恩元) 편찬 ‘난혜소사(蘭蕙小史)’에서는 그간 소개 된 전통품종은 물론 당시 신품종까지 아름다움의 감상 기준이 되는 화형(花型)의 분류까지 집대성하여 중국 개혁초기 일경구화에서 접피기(蝶花)나 기화(奇花)가 다수 출현하기 전까지는 현대의 난인들에게 전통적인 관념처럼 부동의 감상법으로 굳게 자리잡고 있었다.
위의 일부 유래에서 나타나듯 이젠 ‘난(蘭)’과 ‘혜(蕙)’에 대한 의미와 더불어 이에 따른 품종 구분이 가능하리란 생각이다. 간단하게 ‘난(蘭)’이라 지칭하는 일경일화 전통춘란을 제외한 모든 Cymbidum속(屬)을 ‘혜(蕙)’로 여기면 편할 듯 …… 다만 중국에서 주의하여야 할 점은 현재 ‘혜란(蕙蘭)’이라 함은 일반적으로 ‘일경구화’를 의미하는 것으로써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대엽혜란(묵란, 보세란), 소엽혜란(사계란, 추란소심)’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유념하면 된다.
또한 문인(文人)들이 즐겨 치는(그림이지만 ‘그린다’로 표현하지 않고 ‘친다’는 표현으로 사용) ‘사군자’중 난초(蘭草)는 주로 일경다화를 치기에 ‘혜(蕙)’에 속하는 품종이라는 점이다.
Ⅱ. 중국 난계의 흐름과 변화.
1. 수난기(受難期, period of passional).
1949년 10월 국민당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중국 공산당은 이후 마오쩌둥(毛澤東)에 의해 ‘대약진 운동’ 전개와 더불어 1966년부터 1976년 9월 마오쩌둥이 사망할 때까지 10년간 이어진 ‘중국 문화 대혁명기간’을 거치며 난(蘭) 문화도 예외 없이 부르주아(bourgeois)라며 말살 되어 대부분의 고전 품종들이 멸종에 가까울 정도로 불에 타 없어지는 가운데 일부에서 암암리에 명맥을 유지하다가 1983년 덩샤오핑(鄧小平)이 중국 중앙 군사위원회 주석으로 최고 지도자가 된 후 개혁 개방 정책으로 인하여 일본이나 타이완으로 유출 되었던 고전 품종들이 중국 본토로 유입되기 시작하여 1990년도부터 서서히 지식층을 비롯하여 일반 대중들에게도 퍼지기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 과도기(過渡期, period of transition)
1990년대 까지만 하여도 인터넷이 활성화되기 전이기에 직접 발 품을 팔아 가며 개인과 개인간의 거래로 이루어지다가 중국도 2000년대에 들어 ISDN 방식을 거쳐 ADSL로 인터넷 보급이 이루어지면서 난 관련 정보를 손 쉽게 공유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설문 조사 결과 난을 구입하는 방식도 직접 산채 13%, 전문점에서 구입한다는 18%에 비하여 월등히 높은 36.36%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하여 거래한다고 밝히고 있다.
필자 역시 중국에서 ISDN 방식으로 인터넷이 활성화되는 시기인 2000년 3월에 ‘한국 춘란 홍보’ 목적으로 중국어와 영문판으로 난 관련 사이트를 HTML 방식으로 직접 제작하여 ‘한국난화망(韓國蘭花網 www.KoreanOrchid.com)’이란 사이트명으로 개설하여 중국 난인들과 교류하다가 중간에 php형식의 프로그램으로 사이트를 재 구성 하면서 메뉴얼 또한 한국어, 중국 간자체, 영어, 일본어, 타이완 온자체 등 5개국 다국어판으로 하여 ‘세계난문화교류회(世界蘭文化交流會 www.gocea.org)’로 개명과 더불어 URL를 변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시기인 2000년부터 2003년 사이의 일경 일화 자생 지역인 저장성(浙江省)과 장쑤성(江蘇省)일대는 역시 전통 품종에서 구분한 화예품(花藝品) 위주로서 매판과 일부 하화판형(荷花瓣型) 춘란(春蘭)들이 평범함 속에 인기가 있었고, 춘검 자생지역인 쓰촨성(四川省) 일대는 타이완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단엽종(短葉種) 수정예(水晶藝)와 함께 매판형(梅瓣型) 또는 하화판형(荷花瓣型)을 가진 난초들이 인기가 있었다. 또한, 연판란(蓮瓣蘭) 자생지역인 윈난성(云南省)에서도 역시 하화판 계통의 난초들이 인기를 더해가고 있었고, 기타 사계란(四季蘭)이나 보세란(報世蘭, 묵란), 일경구화(一徑九華) 지역도 보편적으로는 단엽 수정예를 나타내는 품종들이 주로 인기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이시기에 전체적으로 보면 화예품과 함께 일부 단엽의 수정예 품종들이 인기가 있었다.
이 시기에는 지역별로 자기 지역 자생란(自生蘭)만 최고라고 생각하여 타 지역에서 나오는 품종은 등한시하고 외면하기 일쑤였다. 즉, 일경 일화 지역에 있는 난인들의 선호도를 예로 들자면 타 지역에서 자생하는 춘란이나 춘검란(春劍蘭), 사계란, 묵란(墨蘭, 보세란), 한란(寒蘭), 연판란은 아예 관심도 두지 않았던 것처럼 타 지역 역시 이와 유사한 형태의 시장 흐름이 있었다고 판단한다.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 난인들이 오로지 자기 지역에서 나오는 난초만을 선호하는 지역적 텃세(?)가 심하다 보니 자연적으로 시장의 범위가 자생지 별로 확연하게 구분되어 있었던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3. 성장기(成長期, growth and development period).
지역주의의 흐름이 2004년도가 되면서 하나씩 경계가 허물어지기 시작하였다. 필자의 사견이지만 자생지 별로 형성 된 지역적인 시장만을 가지고는 상인들이 시장성 확장에 많은 어려움을 느꼈고 또한 품종도 전통 방법에 의한 분류만을 가지고는 도저히 활성화하기가 어려웠다고 생각한다. 이런 침체 된 중국 난계를 탈피하려는 움직임이 각 지역 상인들을 통하여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전통 품종에서 나타난 우수한 품종들과 견줄 신품종(여기서 언급하는 신품종은 ‘상품’을 의미)이 나오기가 어렵다는 판단 아래 무수히 나타나는 기화(奇花) 들을 선별하기 시작하였으며. 또한, 상인들과 자본이 있는 유지들이 일명 스타 품종 만들기에 몰입함과 동시에 타 지역을 넘나들면서 교류와 함께 매매를 주도. 결국, 현재에 이르는 중국 난계의 융합과 함께 지역 시장성에서 탈피하여 전 중국 시장이라는 틀을 만들어 냈을 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 난계 시장까지 유행을 전파하는 계기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이젠 자생지 지역에 국한하지 않고 수익성이 있고 투자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난인들 또는 투자자들이 일경일화 춘란, 일경구화, 춘검란, 사계란, 연판란, 두판란, 묵란(보세란), 한란 등등 품종을 불문하고 마구잡이로 거두어 들이다 보니 결과적으로는 2006년도까지 이어져 그 어느 때보다도 난초가 “녹색 보석, 녹색 주식”이라는 단어가 매스컴을 통하여 보도되는 현상도 유난히 많이 나타나면서 일반인들도 덩달아 오로지 투기 목적으로 난초를 구입하는 과열된 모습도 나타나다 보니 난초 값에 상당한 버블 현상(bubble phenomenon)이 섞여 있는 상황까지 발생하였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한국과 일본, 타이완에서도 덩달아 중국 난계 시장에 눈독을 들이며 일부 거상들은 품종을 싹쓸이하듯 수집하여 가는 모습도 보여 더욱더 중국 난계를 들뜨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던 시기.
4. 전성기(全盛期, period of renaissance) 속의 과열기(過熱期, period of superheater).
2005년에 과열 현상으로 영향을 받은 난인들의 상황을 파악하고자 필자가 운영하는 사이트를 통하여 몇 가지 설문조사를 해 본 결과 중 ‘난을 접하기 시작한 기간’이 6개월 ~ 1년 사이 14.03%, 1년 ~ 3년 26.31%, 3년 ~ 6년 29.82%, 6년 ~ 10년 15.78%, 10년 ~ 15년 사이가 5.26%로 나타났다. 이 통계를 토대로 본다면 3년에서 6년 사이라고 응답한 사람이 29.82%로 가장 높고, 두 번째로 6년에서 10년 사이가 15.78%, 두 기간을 합산하면 전체 응답자중 절반에 가까운 45.6%로 나왔다는 것은 중국은 1990년도를 기점으로 하여 2000년대 초부터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활성기에 접어들자 일반인들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여 저변 확대되면서 난을 접하기 시작한 6개월에서 1년 사이로 응답한 사람이 14.03%로 증가 추세 속에 6개월에서 6년까지의 통계가 전체 응답자중 2/3가 훨씬 넘는 70.16%를 차지한다는 것은 중국 난계의 가장 활황기(活況期)라 할 수 있는 2004년부터 2007년까지 4년간 이어지는 발판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또한 ‘난을 왜 기르는가?’라는 질문에선 취미가 58.4%, 취미 겸 투자 목적 28.30%, 순수 투자 목적 1.88%, 기타 7.5%로 나왔지만 필자가 다양한 경로를 통한 교류 경험을 토대로 한 사견으로는 설문 조사 결과와 정반대로 90% 이상이 투자를 목적으로 난을 가까이 한다고 여겨졌었고 이 현상은 현재도 같은 생각이다.
‘선호 품종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론 전통 춘란 일경일화 춘란 중 화예품이 29.25%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일경구화 21.08%, 일경일화 춘란 엽예품이 16.32%, 건란(建蘭)을 포함한 사계란 10.88%, 연판란 7.4%, 한란 4.46%, 춘검란 4.08%, 보세란(묵란) 3.40%, 기타 2.72%의 순서로 응답을 하였다. 이중 일경일화인 전통 춘란의 엽예품(葉藝品)과 화예품(花藝品)을 합치면 45.25%로써 중국은 일경일화가 인기가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현재에도 큰 변화가 없다는 생각이다.
여기서 나타나는 특징이라면 2000년도 초기에 비하여 엽에품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전에는 대부분 화예품 위주였던 것에 비추어 볼 때 중국도 이젠 엽예품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는 현실이다. 특히 난초가 녹색 보석이라고 알려 지기 시작하면서 산채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감안 할 때 중국도 한국과 일본 난계처럼 일정기간 엽예품이 인기를 독차지 할 수 있다는 가정도 해 본다. 그러나 아직도 난초하면 향(香)이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중국 난인들 이다 보니 엽예품 관리 배양에 대한 부족으로 멋진 작품의 엽예품을 보는 것은 시기상조라 생각했었던 시기였다.
또한 당시 난인의 연령층을 본다면 20~30대가 주축이 되고 있기에 한국에 비하면 다소 젊은 연령층의 난인들이 활동을 하고 있는 편인데 이것은 순수 취미보다는 판매나 투자를 목적으로 활동하는 인구가 급속도로 확장되고 있는 가운데 특히 인터넷의 보급 확대에 따른 영향으로 받아들여진다. 소위 말하는 컴맹들 범주에 속하는 당시 40대 이상의 연령층은 오프라인으로 활동하다 보니 자연적으로 젊은 층이 두각을 나타냈다고 사료된다.
중국 난계가 활성화 되면서부터 광둥성(廣東省)을 중심으로 거대한 도매 시장이 집중적으로 형성되는 시기였으며, 운영 또한 내륙인이 직접 운영하는 난 농장도 많지만 내면을 파고 들어가 보면 타이완 상인들이 관여를 하거나 연관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중국 난 시장은 타이완에 의하여 좌지우지 되고 있음을 느낀다. 이에 따라 중국 화훼시장 속의 중소매 시장에서 소요되는 선물용과 일반 보급용 품종은 90%이상 광둥성에 위치한 도매 농장으로부터 보급받는 것이 중국 현실이지만 기온이 높고 습도가 높은 지역에서 중국 전역에 난초 공급이 이루어지다 보니 몇 가지 심각한 문제점이 제기되기도 했는데, 가령 광둥 지역의 재배 농장에 바이러스가 만연한다면 그 바이러스에 감염 된 난초가 중국 전역에 급속도로 번지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만 해도 일부 바이러스를 제외하고는 바이러스 병증을 알아보는 난인들이 극히 적다는 것이 큰 문제점이었다. 결국 이러한 문제로 2005년 3월부터 수많은 바이러스에 걸린 상품들이 중국 전역에서 팔려 나가는 현상을 보게 되었다. 그 다음으로 고온 다습한 환경에서 웃자란 난초들이 내륙의 일반 상점과 난인들의 손으로 들어 왔을 때 바로 중부 내륙 이북의 자연적인 환경 기후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발생되고 있는 가운데 심각한 문제는 타이완과 일본에서 들어 온 연약한 묘들을 짧은 시간에 속성 재배로 성촉으로 성장시켜 상품으로 내놓은 것이 더욱 큰 문제였었다.
당시 인기품들은 2000년대 초반에는 품종을 불문하고 단엽의 인기가 매우 높았었다. 특히 단엽 수정(水晶)은 인기를 더하며 한화로 억대를 호가하는 품종들이 나타나곤 하였는데 아마 1990년도 중반에 나타난 타이완의 묵란 달마의 인기에 편승하여 나타난 현상이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그러나 현재는 인기가 많았던 단엽 수정들의 인기가 시들해진 반면 예전부터 꾸준한 인기가 있는 품종들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어떤 종류의 난초라도 화형이 정형화 된 매판이나 원판화(圓瓣花), 두화(豆花)의 화예품 인기가 점점 상승하고 있는 가운데 2000년 초반부터는 기화(奇花)와 기엽(寄葉)에 매우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실재 거래에 있어서도 상당한 고가를 형성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이러한 현상은 난계 시장이 정체되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상인들이 기존의 전통 품종에서 벋어나 새로운 품종을 선택하여 시장의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한 이벤트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특히 쓰촨성(四川省)을 중심으로 한 춘검란과 사계란 계열의 매판형 또는 기화 계열의 화예품이 2005년 쓰촨성 러산(樂山)에서 개최된 ‘2015 중국 전국전’의 영향과 중국 전역에 부는 인기에 힘입어 난초 경매 사이트에서도 기화가 나오면 경쟁이 과열되는 현상까지 나타났던 시기 속에 일부 육종품들도 다양하게 선 보인 시기라 할 수 있다.
2006년 들어서 특이한 사항은 그간 과열현상으로 인하여 전통 명품 못지않은 매판이나 하화판이 나타나면 일확천금을 노리듯 가격이 몇 천만 원부터 몇 억 하는 난초가 나왔다고 매스컴을 통하여 자주 보도가 된 터라 결국 마구 잡이 산채로 인하여 자생지가 황폐해지자 급기야 후베이성(湖北省)에서는 국가 1급 보호 식물인 일경 구화의 자생지 보호 차원에서 성(省) 정부에서 대대적인 단속에 나서 모든 산채인과 거래자를 색출하여 난초 압수는 물론 벌금 부과와 심한 경우는 구속까지 시키는 과정에서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부 한국 난 상인들도 적발되어 구속 및 벌금형에 처한 사례까지 발생하였던 시기였다. (참고로 중국에서 일경 구화 품종은 국가 1급 보호 식물로 지정되어 있어서 채취 및 매매와 반출 금지로 되어 있으며, 채취 및 매매 적발 시 관련 법규로 엄벌에 처함.)
특히나 2006년도 들어서 품종을 불문하고 기화인 삼성접(三星蝶)이나 엽접(葉蝶, 일반적으로 蝶草디에쵸로 통용)의 예(藝)를 나타내는 품종은 그야말로 마치 1등 복권에 당첨된 금액과 같은 억 억 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당시의 중국 난계는 연속적으로 버블 현상 속에 들떠 있었던 시기였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전에는 중국의 몇몇 거상들이 중국 난계 시장의 흐름을 장악했었지만 당시는 자본력이 있는 여럿이 컨소시엄(consortium) 형태로 모여 기존에 선점하고 있던 거상들과 대면하면서 중국 시장의 흐름을 바꾸는 한편 그들이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이런 과열된 중국 난계 속에 또 다른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었는데 다름 아닌 난계에 불청객(?)들이 자주 나타나 한 달이 멀다 하고 지역별로 “ㅇㅇ지역의 ㅇㅇ난원에서 인민페 몇 백만 위안가량의 난초를 도난 당했다”라는 기사가 각 인터넷과 지방 신문에 보도되고, 심지어 손님을 가장한 무리가 난원을 방문하여 무참하게 인명 살상을 범하면서 난초를 강탈하여 가는 사례까지 발생하는 심각한 문제점을 낳기도 한 다사다난했던 2006년 중국 난계의 흐름 속에 자연적으로 한국 난계도 넘나들며 시장 확장을 위하여 유향종이 아니면 난초로 취급조차 하지 않던 중국 난계의 상인들이 한국 시장까지 손을 뻗치기 위하여 상술적으로 일부 한국 춘난 구입은 물론 자주 방문하여 교류와 함께 한층 더 중국 난의 유행을 자극하고 있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일부 몰지각한 상인들에 의하여 중국 후베이성(湖北省)이나 기타 지역에서 채집된 무향종 난초가 한국 자생란으로 둔갑하여 국적 불명의 난초가 한국으로 유입되는 문제점까지 발생한 사례도 많았던 시기로 한국 상인들은 우선적으로 정확한 중국 문화와 난계 정보를 파악하여야 함에도 그저 뛰어들고 보자는 급한 성격과 난에 대한 용어는 물론 전문 지식이 없는 중국 교포 통역을 대동하여 상술에 뛰어난 중국 상인들과 거래를 하다 보니 한문 뜻 풀이식 직역을 하거나 의미를 모르면 통역 마음대로 통역하여 본의 아니게 웃지 못할 에피소드와 함께 실책을 범하고 커다란 손해까지 발생하는 것이 당시 현실이었다.
2006년도에 이어 화려한 변신을 꿈꾸던 2007년도의 중국 난계는 윈난성 따리(大理)의 저명한 난인인 리잉롱(李映龍)씨가 개인 사비로 1월 26일부터 베이징 인민대회당(人民大会堂)에서 개최한 ‘第1會中國蘭文化大展’의 첫 전시회를 시작으로 3월 1일부터 저쟝성(浙江省) 닝보시 베이룬(寧波市 北侖)에서 개최 된 ‘首屆中國蘭花大會’, 그리고 3월 9일부터 후베이성(湖北省) 우한(武漢)에서 중국 전국대회로 개최 된 ‘第17屆中國(武漢)蘭花博覽會’까지 전국적인 대형 규모의 큼지막한 3곳의 전시회를 개최하면서 중국 난계가 전년도에 이어 활황을 이어가리라 생각했었다. 이때까지만 하여도 어느 누구도 그 이후의 불황을 꿈에도 예견하지 못한 상태였었다.
또한 그저 활황이라는 현실을 기반 삼아 쓰촨성(四川省)의 모 상인은 철저한 계획 아래 방송국 관련자를 섭외하여 고가 난초에 대한 투자 전망의 장점과 광고를 목적으로 2006년 10월 CCTV2 채널 ‘半小時觀察(30분 관찰)’이라는 프로그램에서 ‘天價蘭花’라는 타이틀로 방송하여 대단한 반향을 불러 일으켜 자본이 있는 투자가들 뿐만 아니라 일명 개미 군단을 이루는 소규모 투기꾼들까지 규합하는데 성공하여 중국 난계에 일반 투자자들을 끌어 들이는 성과를 이루었던 전례로 방송의 위력을 실감한 상인은 2007년 2월에 다시 한번 방송에서 난초를 띄워 줄 것을 방송국 관련자들에게 섭외하였지만 같은 내용을 두 번씩이나 공영방송에서 방영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거부 당한 후 오히려 방송관련 담당자들은 그 해 2월 달에는 ‘고가 난초에 대한 문제점’을 심층 분석 취재하여 방영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이 방송이 방영 된 후 그 동안 난초에 투기를 하였던 투자자들이 대거 주식 시장으로 빠져 나가기 시작하면서 중국 난계는 혼돈에 휩싸였고 깊은 불황에 빠져들게 한 중요한 계기의 시발점이 된 셈이다. 이런 결과를 본다면 결코 공영방송을 통하여 일반인들에게 난에 대한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난초를 이용한 재테크(투기목적)를 강인하게 심어 줄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데 정작 한국의 현 난계는 중국의 이런 행태를 답습하고 있다는 느낌에 왠지 서글퍼지기도 한다.
한마디로 중국 난계는 2007년도가 그 어느 해보다도 다사다난했던 한 해로 후반기에 접어 들면서 전반적으로 투자자들이 관망 또는 빠져 나가면서 서서히 난초 값이 폭락 상태로 접어든 시기였지만 일부에서는 신품종의 인기로 인하여 전통 품종의 꽃망울에 캡 처리와 약물 처리 방법을 통하여 신품종 매판 또는 매판 백화(白花)로 둔갑시킴은 물론 심지어 전국대회에서 조차 접착제를 이용하여 가짜로 조합한 품종을 출품하여 수 많은 심사위원들의 눈을 속여 금상까지 수상하였지만 관람객으로 참관한 수 많은 난인들의 눈까지는 속이지 못하여 결국 들통나 수상이 취소되는 해프닝까지 발생.
결과적으로 2006년에 이어 2007년도에도 고가 난초에 대한 일확천금을 노려 전국적으로 난을 절취하기 위하여 강도 살인 사건이 그 어느 해 보다 번번하게 발생하여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모순점까지 연출하였었다. 여기에 하반기에 접어 들어서도 불황이 타개되지 못하면서 그 동안 한 몫을 기대하며 무리하게 거액의 은행 대출과 사채까지 끌어 들여 투자하였던 자금력이 약한 상인들은 자금 압박에 견디지 못하고 그간 수집한 물량을 덤핑으로 풀어 버리는 현상과 더불어 자살하는 사람까지 나타났고 아예 난계를 떠나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하였던 2007년도 중국 난계의 뼈 아픈 현실 속에서도 그 동안 중국에서 자생하는 품종 중 개발이 가장 뒤 떨어진 품종인 한란 품종은 2007년 가을부터 한란 개발을 위하여 한란 산지를 중심으로 관련 단체 성립과 동시에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었으며, 나름대로 한란 분류법과 감상법을 토론ㆍ배포하고 있는 상황에 힘 입어 타 품종에 비하여 유일하게 단가가 서서히 올라 전년도 대비 200%까지 상승하는 놀라운 변화도 있었던 2007년이었다.
5. 불황기(不況期, period of slump).
2007년도 하반기부터 불황의 그림자 속에 2008년도에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론(Sub-prime Mortgage Loan) 사태로 인해 촉발된 미국 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 경제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는 가운데 1조 9,056억 달러의 외환을 보유(2008년 9월 말 통계)하여 세계 최대의 외환보유국, 그리고 경제규모 세계 4위인 중국도 부동산 시장의 위축과 더불어 수출 둔화와 함께 경제 성장률의 급격한 하락을 초래한 2008년, 일각에서는 중국의 경제성장 둔화로 세계 경제 성장률이 2009년도는 `제로(0)`까지 하락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 가운데 당시 한국도 미국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증시가 폭락 국면을 맞고 있으며 원 달러 환율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치솟고 있는 가운데 중국 난계 시장도 꽁꽁 얼어 붙은 동면을 맞이 한 형국이었다. 이 시기가 한국은 IMF보다 더 어렵다고 했던 제2의 외환위기의 시기로 회자되는데 당시 미국에 유학하는 딸을 둔 필자로서는 원 달러 환율이 치솟고 있는 현실의 어려움을 직접적으로 겪었던 어려운 시기로 기억하고 있다. 그 어려움은 당시 필자가 거주하던 베이징의 한인타운인 ‘왕징(望京)’지역 파출소의 한국인 담당자에게 직접 확인해 본 결과 그 지역에 거주하는 한인 숫자가 베이징 올림픽 이전엔 약 8만여(관할 파출소 통계)명 정도였지만 외환위기가 가속된 후엔 2만여 명으로 줄어 들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었던 시기로 대부분의 난초 가격도 2007년도 대비 50% 가까이 폭락하는 현상으로 이어져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듯 화훼시장에 가보면 기존엔 취미 혹은 투자 대상 품종 위주로 판매하던 난 상점들이 이젠 일반인 상대로 판매 방향을 전환하면서 80% 이상 선물용으로 채워져 가고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에도 사계란과 보세란이 선물용으로 많이 소비됨과 동시에 한국에 대량 수입되고 있었지만 반대로 양란류는 꽃이 크고 색상이 좋은 한국 생산품이 중국으로 수입되어 설날 전후엔 한국산이 선물용으로 인기를 독차지하는 시절도 있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저쟝성(浙江省) 원저우(溫州)에서 개막된 2008년 중국 전국전인 ‘第18屆中國(溫州)蘭花博覽會’에서는 심사 시 수상작 선정 방법이 신품종 위주로 일관하던 예전 방법에서 탈피하여 사견이지만 한국을 왕래하던 중국 난인들이 한국의 심사 방법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작품성에도 많은 점수를 부여하여 대작 위주로 출품 되었던 전통품종들도 특별금상(참고로 중국 전시회에선 대상이 없고 특별금상 몇몇 작품이 최상위 수상작임)에 선정되는 획기적인 변화의 바람을 몰고 왔었다. 특히 일부에서 대낙견(大落肩)으로 개화한 전통품종 소심(素心)인 ‘장하소(張荷素)’가 특별금상을 수상한 것에 빗대어 “심사위원들이 제대로 심사한 것이냐, 심사위원들이 너무 연로하여 제대로 된 난초를 볼 수 있는 시안을 가지지 못했다, 이젠 전국전에서 수상하려면 고단가의 신품종보다는 전통 품종들을 재배하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여기 저기서 터져 나오기도 하였지만 분명한 것은 중국에도 그간 작품성은 배제한 채 1촉이든 2촉이든 신품종 위주로만 출품하던 전시회에 분명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예년 같으면 전국전에서 수상한 신품종 위주의 작품들은 어김없이 인기품목으로 부상하였지만 2008년도에는 이렇다 할 인기 부상 품종이 없다는 것 또한 2008년 중국 난계의 특이 현상이었다.
또 다른 특이한 점은 미약하지만 풍란(風蘭)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는 중국 난인이 확산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필자가 운영하는 사이트를 통하여 2004년도부터 중국 난인 상대로 개설한 Forum에서 활동하는 회원들의 성향을 보면 2006년도부터 풍란에 대하여 조금씩 관심을 나타내더니 2008년도에는 직접 풍란을 재배하는 난인들이 통계적으로 볼 때 300%정도 확산. 더욱이 중국 내에서는 풍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공유할 수 있는 사이트가 바로 필자가 운영하고 있는 ‘韓國蘭花網’과 ‘風蘭網’이 유일하기에 풍란에 관심이 있는 난인들이 회원으로 가입하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던 편으로 필자의 사정 상 현물을 직접 공급하는데 한계가 있었지만 이렇게 확산되는 풍란 취미계를 한국내에서 잘만 활용했다면 당시 침체 되었던 한국 풍란계에 많은 도움이 되는 계기가 되었을 텐데 일부 몰지각한 상인들로 인하여 필자가 5년간 공들여 선전해 온 중국 풍란 시장을 물거품으로 사라지게 한 에피소드도 있었다.
그리고 당시까지 중국 난계 시장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었던 본토 상인들이 힘을 잃어 가는 반면 그간 조용히 중국 난계를 주시하고 있던 타이완 상인들이 예전엔 중국 본토 대상들과 무역 거래 형식으로 일관 하다가 2006년도 부터 일부 거래 형식을 조금씩 직접 거래 및 판매 방법으로 바꾸더니 2008년 들어서는 본격적으로 컨소시엄 형태로 대단위 기지를 형성한 광둥성(廣東省)을 기지 삼아 타이완에서 대량 증식한 개체들을 중국 전역에 직접 보급하고 있는 상태로 변모하게 되면서 결국 중국 본토에서 일부 큰 상인들이 좌지우지하던 중국 난계 시장을 타이완 상인들이 직접 대거 참여하면서 시장 판도를 바꾸어 놓았던 시기였었다.
6. 침체기(沈滯期, period of stagnation)
2009년도 중국 전국 전시회인 ‘第19屆中國(溫江)蘭花博覽會’가 2월달에 쓰촨성(四川省) 청두시(成都市) 원장취(溫江區)에서 개최되어 2005년 2월 러산시(樂山市)에서 개최 된 ‘第15屆中國(樂山)蘭花博覽會’를 계기로 중국 난계에 호황을 누리게 했던 전례에 비추어 4년 만에 다시 쓰촨성에서 개최된다는 점에서 다소나마 불황의 늪에서 헤어 나올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은 사라지고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Sub-prime Mortgage Loan) 사태로 인해 촉발된 미국 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 경제에 암운을 드리웠다면 2009년은 A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influenza virus)가 그 해 3월 말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디 에이고(San Diego)에서 발열, 기침 및 구토로 내원한 10세 소아의 비인두(鼻咽頭, nasopharynx) 흡입 검체에서 처음으로 검출되었고, 이후 신종 인플루엔자 A(H1N1)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 전염되어 사람들에게 감염을 일으켜 세계 곳곳에서 사망자가 발생하였고, 그 해 말까지도 전염ㆍ확산되고 있었지만 무엇보다 백신부족과 더불어 치료제인 타미플루(Tamiflu) 복용 후 극소수이지만 일부 복용자에게서 환청 또는 환각증세가 일어나 한국내에서도 타미플루를 복용한 10대가 아파트에서 투신하는 사례까지 발생하여 더욱 공포의 대상이 되어 한국내에선 군중이 많이 모이는 행사가 취소됨은 물론 난계에도 영향을 받아 계획되었던 일부 전시회가 연기 또는 취소가 되기도 하였다.
당시 감기환자 중 80%가 신종플루 감염자라고 외국계 매스컴을 통하여 보도되고 있는 중국은 정확한 통계 발표가 폐쇄된 행정당국의 조치아래 중국으로 입국하는 모든 공항과 항만의 입국장은 2중 3중으로 철저하게 통제를 하면서 발열자를 색출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던 당시 정황 속에 표면적으로 볼 땐 개국 60주년을 맞이하여 계획 된 크고 작은 행사가 취소되기 보다는 더욱 성대하게 행사를 치러내는 중국의 대국적인 모습을 엿 볼 수가 있었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이러한 현실로 인하여 경제활동이 침체되고 위축 될 수 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도 중국 전국 전시회인 ‘第19屆中國(溫江)蘭花博覽會’와 건국 60주년 축하 행사의 일환으로 9월달 개최 된 ‘第七屆中國花卉博覽會’가 베이징 순이(順義)를 중심으로 각 지역별로 마련 된 전국 전시장에서 동시에 개최될 정도로 축제 분위기를 연출하였지만 결과적으로 2009년도의 중국 난계 역시 2008년과 비교하여 특별히 이슈가 되는 신품종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 특이할 만하다.
더욱이 세계 금융 위기 여파와 더불어 시작 된 경제 악화로 인하여 난계에도 영향을 받아 시장이 위축되면서 2009년도 상반기까지 난초 값이 지속적으로 폭락하여 그간 자금력이 유지되는 투자자들이 관망하면서 많은 양의 난초를 매입하여 때를 기다리고 있던 소장가와 상인들도 장기간의 침체로 경영난에 허덕이게 되자 하반기부터는 많은 물량이 시장에 쏟아지기 시작하면서 가격 하락세가 가속된 계기가 된 반면 그 동안 고단가의 인기 품종을 소장하지 못했던 난인들은 종자목 기준으로 대거 매입을 추진하는 현상으로 인하여 그간 침체되었던 난계 시장이 활발하게 미약하나마 활기를 되찾아가는 모습까지 보였던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한국 국내시장처럼 가격 폭락 시 거들떠도 안보는 현상과 다른 점으로 중국은 시장 경기가 좋지 않을 땐 고단가를 고집하지 않고 과감하게 분주하여 상작은 제 값을 받되 중하작은 저단가로 시장에 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인들의 결단이 오히려 침체되었던 시장에 활력소 역할을 하게 되어 활발한 상거래가 이루어져 조금씩 침체 분위기에서 벋어나고 있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위기는 곧 기회다’라고 했듯이 일부 지역에서는 컨소시엄을 형성하여 상상을 초월하는 대단위 난 농장 건설을 진행하며, 난실도 현대식으로 확장하고 있었음을 여러 난인들을 통하여 소식을 듣고 있었다. 이처럼 중국 각 지역에서 지도자급 난인들은 침체된 위기 속에 오히려 시설을 더 확충하면서 투기가 아닌 투자를 늘리면서 미래를 계획하고 있다는 것을 볼 때 바로 이런 현상이 중국의 저력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노력에 힘 입어 2010년은 1월에 윈난성(云南省) 따리(大理)에선 시인민정부(市人民政府)의 지원 속에 大理市蘭花協會 주최로 구청(古城)에서 개최 된 ‘2010中國大理 第三屆國際蘭花茶花博覽會’의 국제 전시회 규모를 기점으로 3월에는 충칭시 인민정부(重慶市人民政府)와 중국 화훼협회(中國花卉協會)의 주최로 충칭(重慶)의 ‘국제회전중심(國際會展中心)’에서 개최된 ‘제10회 아태난화박람회(第10屆亞太蘭花大會, APOC 10) 겸 ‘第20屆中國(重慶)蘭花博覽會’와 비교적 일경구화의 큰 전시회로 4월에 장쑤성(江蘇省) 타이창(太仓)의 南園에서 개최 된 '第5屆 江蘇省蕙蘭展'까지 필자는 직접 다니며 전시회를 관람하면서 전년도와 다른 양상임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를 통하여 부각된 품종들이 바로 신품종 소심(素心)들이었다.
이중 막강한 권력을 자랑하던 태자당 핵심 인물로 2012년 3월에 부패 문제로 해임되었지만 2010년 당시 충칭(重慶)시 당서기(黨書記, 시장)였던 보시라이(薄熙來) 시장이 개막식에 참석한 충칭 전국전에서 연판란 단엽 하화판 백화 소심인 ‘소관하정(素冠荷鼎)’이 특별금상(대상)을 수상하면서 4촉에 당시 환율로 한화26억 2천만 원이라는 고단가로 중국 전역 매스컴에서 대대적으로 보도되는 톱 뉴스거리로 등장하였으며, 한 달도 안되어 일경구화 전시인 '第5屆 江蘇省蕙蘭展'에서는 4촉의 매판소심 신품종인 '소심진(素心眞)'이 특별금상과 더불어 역시 당시 환율로 한화 20억 4천만 원이라는 가격으로 인하여 다시 한번 세간에 특별 뉴스로 떠오르며 많은 난인들은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난(蘭)’에 대한 관심과 투자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새롭게 부각시킴은 물론 ‘소심’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었었던 시기로 여겨진다.
이렇게 소심 개체들이 관심사로 부각되면서 그 동안 일부 자료만 공개하면서 증식을 하던 춘란 소심 개체들 중 삼성소접(三星素蝶)과 다판기접소심(多瓣奇蝶素心)들이 시장에 나타나기 시작하였지만 문제는 늘 따라다니는 신품종에 대한 출처와 더불어 원종에 대한 신빙성이 대두되어 시장에서 제대로 거래되기 힘든 상황으로 전개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하였다. 이들의 가장 큰 문제는 대부분 무향이라는 점에서 개화한 화형이 일본춘란 일부 고전품종에서 나타나는 품종 특성을 보여주었기에 이런 품종들이 중국산으로 둔갑했다는 의구심으로 인하여 그 진위 시비에 휘말리고 있는 양상 속에 특히 다판기접(多瓣奇蝶)의 경우는 배양 환경에 따라 화판수가 다르게 나타나는 특징이 있기에 고정성을 보이지 못한 기화소심(奇花素心)들은 일부분 많이 배양되어 가격이 저렴한 일본 춘란이 중국산 신품종으로 둔갑하는 현상까지 보였던 시기였던 것이다. 이런 가운데 필자가 선별, 명명하여 ‘한국난연합회 난등록위원회’를 통하여 등록 된 중국춘란 무향종 삼성소접(三星素蝶)인 ‘청심접(淸心蝶)’은 확실한 개체의 특징과 출처가 정확하여 세간에 떠도는 일본란이 중국란으로 둔갑되었다는 일체의 시비가 없이 어디에 내 놓아도 우수개체로서 손색이 없는 품종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또한 소심과 더불어 홍화(紅花)의 인기 부상으로 인하여 전년도에 이어 중국의 여러 지역에서 화학 약품을 이용하여 인위적인 홍화로 둔갑시키는 기술이 날로 발전하면서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 불행하게도 특히 한국 난인들이 자주 다니는 지역인 후베이성(湖北省)과 허난성(河南省), 그리고 윈난성(云南省) 일부 지역에서 유달리 가짜 홍화를 제조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는데 일부 중국 난인들에 의하면 한국의 일부 보따리 상인이 기술을 전수하여 만들어져 한국 국내에도 일부 유입되었다는 낮 뜨거운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시기 이기도 하다.
쉽사리 불황이 걷힐 기미가 보이지 않자 중국 전시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이 바로 예년에 비하여 대주로 된 작품들이 유달리 많아졌다는 점, 이는 그 동안 호황기에서는 고단가를 유지하여 왔기에 판매를 목적으로 한 두촉씩 분주하여 증식시키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이었지만 불황으로 인하여 판매가가 폭락되자 자본에 영향을 받지 않는 난인들과 판매를 목적으로 하지 않은 난인들은 전통 재배 방법으로 되 돌아가 대주로 재배하기 때문에 각종 전시회에서 대주로 된 작품들이 유난히 많이 나타나게 된 이유 역시 자본력에 따라 불황기를 대처하는 방법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고 보여진다.
또 하나의 특징은 호황기에 꽃이 없는 상태로 개화 이미지만을 참고로 하여 판매자의 신용을 믿고 거래 된 품종 중 일부 품종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개화주(開花株)로 증식되어 개화하게 됨으로 인하여 거래 당시 개화 참고 이미지와 전혀 다른 품종으로 확인되는 개체들이 많이 나타나면서 반품과 손해 배상 문제로 혼란을 야기하는 현상 증가와 더불어 육종품으로 나온 개체들을 자연산으로 둔갑하여 거래 된 품종 역시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육종 배양종들이 대거 시장에 풀리면서 그 실체가 밝혀지기 시작하자 곳곳에서 시비에 휘말리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도 하는 가운데 기후 마져도 연초부터 발생한 폭설과 함께 봄에는 저온 현상이 이어지면서 여름에도 폭우 속에 햇살이 비치는 날이 많지 않아 일조량이 부족한 상태로 그 어느 해 보다도 변화가 많은 이상기후로 말미암아 난들이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지 한국 국내와 마찬가지로 중국 현지에서도 예년에 비하여 원인 모르게 난들이 고사하는 현상이 많았던 2010년이었다.
필자로선 2011년은 회사 업무로 인하여 베이징을 떠나 중국 남부 지역인 푸젠성(福建省) 푸조우(福州)로 이사하여 1년 내내 고온 다습한 환경에 적응해 가면서 중국 행정관리들과 부딪히다 보니 그 어느 해 보다 개인적으로 바쁘게 움직인 탓에 짧게만 느껴졌던 시간이었지만 푸조우(福州) 난협의 고문으로 추대되어 시간이 날 때 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타이완을 비롯한 주변 지역 난인들과의 교류가 많았던 시기였었다.
7. 전환기(轉換期, transition period)
2011년에도 전년도에 고 단가로 인하여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며 화제가 되었던 '소관하정(素冠荷鼎)'과 일경구화 매판 소심의 영향으로 2월달에 윈난성(雲南省) 쿤밍시(昆明市) 국제회의전람중심(昆明国际会展中心)에서 개최되었던 '제21계 중국’쿤밍’난화박람회(第21屆中國’昆明’蘭花博覽会)'에서 특별금상을 수상한 작품 중 소심의 비중이 높았던 편으로 중국춘란 ‘천지금성(天地金星)’과 ‘묘강소접(苗疆素蝶)’, 연판란 백화소심 ‘영회소(永懷素)’를 통하여 소심(素心)의 특성과 아름다움을 재 조명하는 계기 속에 유달리 소심류의 작품들이 난인들의 관심을 받으면서 부각되었던 한 해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 한편 일경구화에서는 소심류가 극히 적은 탓에 여전히 ‘자사성(紫砂星)’, ‘노씨예접(盧氏蘂蝶)’, ‘노씨웅사(盧氏雄獅)’, ‘남림예접(南林蕊蝶)’을 비롯하여 최고의 관심 품목으로 이목을 집중시킨 다설판(多舌瓣) 기접(奇蝶)인 ‘자옥금사(紫玉金砂)’, 수형(樹型)피기인 ‘자형수매(紫荆树梅)’와 외접(外蝶)피기 소심 ‘서시(西施)’를 비롯하여 녹경매판(綠逕梅瓣)인 ‘도보매(陶寶梅)’와 하화판형 ‘취풍(翠豊)’, ‘선하극품(仙荷极品)’, 그리고 타운형(朶云形) ‘황운(黄云)’등 기화들이 우위를 차지하며 이는 90년대 중반 이후 2000년대 초기에 발견된 개체들이 이번 전시회를 통하여 고정성과 우수성을 재확인 시켜 주었던 전시회 분위기였었다.
하지만 몇 년간 활황기 속에 일확천금을 노리며 마구잡이로 산채로 훼손 된 자생지는 이미 씨가 말랐다고 할 정도로 자연이 고갈 된 상황이라 그런지 이렇다 할 신품종이 나타나지 않은 채 기존 품종들이 무난하게 시장을 형성하는 모양세를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 난계는 긴 불황 속에서도 미래를 위하여 대규모로 투자하는 난인들이 조금씩 늘어나는 시기가 바로 2011년. 그간 행해졌던 것처럼 난인들을 대상으로 ‘버블현상(Bubble phenomenon)’을 유발하여 폭리를 취하기 위한 투기가 아니라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즐길 수 있도록 대중 속을 파고 들기 위하여 대규모로 농장 시설을 확충하면서 폭락한 품종들을 확보하여 대중들이 손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단가로 출하한다는 목적으로 투자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2003년 방영 된 드라마 이영애 주연의‘대장금(大長今)’을 기점으로 한류 드라마 열풍으로 다양한 장르의 한국 드라마가 중국 각 가정의 안방을 차지하는 가운데 보여진 한 장면,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가정은 물론 회사 사무실을 비롯하여 가는 곳 마다 많은 공간에 ‘난(蘭)’이 있는 장면을 본 중국 난인들, 이들은 필자를 만날 때마다 “진짜 한국에는 저렇게 곳곳에 난이 있느냐?”며 반문할 정도로 많은 관심을 나타내며 화면을 통하여 이들의 눈으로 확인한 ‘난’이 대중화된 모습을 간접 체험한 영향이 크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당시 저명한 여러 난인들과의 대담에서도 난계의 활성화 방안과 상인들이 살아 남을 수 있는 방법으로 내세우는 것이 바로 대중 속을 파고 들 수 있는 산업화를 위한 투자만이 살아 남을 수 있다고 한결같이 이야기하고 있었던 시기로 필자와 가까운 지인을 비롯하여 사업성에 민첩한 난인들은 알게 모르게 대중품을 위한 대형 온실 건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2012년 들어 서면서부터 중국 난계는 마치 활화산이 휴면기에 들어간 형상으로 별 이슈 없이 조용한 가운데 2월달 춘란 자생지역인 저쟝성(浙江省) 닝보시(宁波市) 쩐하이취(镇海区)에서 개최 된 중국 전국전인 ‘第22届中国(镇海)兰花博览会’에서 특별금상을 수상한 춘란 삼성접인 성세예접(盛世蕊蝶), 화호접(花蝴蝶)과 하화판 홍화 흠하(鑫荷), 연판란 소관하정(素冠荷鼎), 춘검 중투호(春剑中透)에서 느끼는 대로 이렇다 할 새로운 신품종이 선보이지 않은 상태로 기존 신노품종(80년대 이후 개발 된 품종) 위주의 품종을 새로 조명하는 듯한 분위기가 연출 되는 가운데 일부에선 타이완 난인들을 중심으로 일경구화 엽예품과 단엽종 위주로 서서히 활기를 찾기 시작하는 모양세를 만들기 위한 사전 작업의 일환으로 종자목 위주로 거래가 활성화되는 기미 속에 상품성과 작품화를 위해 용틀임하는 시기의 연속 속에 2013년을 맞이하며 본격적으로 일경구화 위주의 전국전이 개최되기 시작한다.
2013년 4월 일경구화 개화기에 당시 중국 전국전인 ‘第23届中国(太仓)兰花博览会’는 일경구화 전통 품종을 많이 배양하면서 여타 지방에 비하여 여러 자생지에서 산채 된 우수 종자목의 일경구화를 집중적으로 수집 배양하는 곳으로 잘 알려진 장쑤성(江苏省) 타이창(太仓)에서 개최되었지만 대부분 대주의 전통 품종과 기존에 나온 신노품종 위주 일색으로 수상작이 나왔으며, 일부분 엽예품을 선 보였지만 역시 특별한 품종의 탄생은 기대할 수 없는 해였다고 할 수 있겠다.
필자는 2013년 3월부터 난 온실을 건립하기 시작하여 6월달에 정식 오픈하여 중국 현지화를 위하여 차근 차근 기본 작업에 정진하게 된다. 이에 앞서 한국 춘란으로 중국 시장 공략을 위한 품종으로 현지 환경에 적응시키며 증식시키기 위하여 이미 2012년 11월에 한국 춘란 중 대표적인 품종으로 현재는 국민난초라 할 수 있는 명품 ‘중투복색화(中透復色花)’인 ‘태극선(太極扇)’ 500여 촉을 중국 현지로 들여 와 배양하며 차후 중국 난인들 난실마다 한 화분씩 자리잡을 날을 기대하며 증식 배양을 시작하여 현재 1,200여 화분 속에 3,500여 촉이 넘게 증식되어 있다.
또한 중국 춘란 기화의 대표품종인 ‘녹운(綠云)’을 현재까지 1만여 화분을 직접 육종품으로 생산하여 하드닝(hardening) 시키며 배양하여 2016년 봄부터 시장에 출하를 시작하고 있는 상태로 발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2014년도 역시 4월달에 일경구화의 자생지인 허난성(河南省) 정조우(鄭州)에서 중국 전국전인 '第24届中国(鄭州)兰花博览会'가 개최되어 다설판 기화인 ‘금수모란(錦繡牧丹)’, 타운형(朶云型) ‘노봉교(老蜂巧)’ 와 ‘옥봉교(玉蜂巧)’를 비롯한 매판인 ‘도보(陶寶)’가 특별 금상을 수상하였고 많은 일경구화 엽예품이 선 보였던 전시회로 일경구화 엽예품 시장을 확장 시키는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시회와는 별도로 일반 난인들의 거래는 꾸준한 편으로 일부 난인 역시 난 농장 개념으로 확장하고 있는 추세가 이어지며 일찌감치 난원을 확장시켰던 곳에선 대중품으로 상품을 출하하는 곳이 많아진 편.
2015년도 중국 전국전도 일경구화의 자생지인 후베이성(湖北省) 수이저우시(随州市)에서 일경구화 개화기인 4월에 ‘第25届中国(随州)兰花博览会’가 개최되어 다양한 엽예품과 색설(色舌) 개체들이 선보여 정조우 전시회에 이어 일경구화 엽예품 거래를 활성화 시키는데 한 몫 했다고 할 수 있지만 실 거래 과정을 파악 해 보면 소문에 의한 소식과 달리 거래되는 양은 저조한 편이다. 이는 아직까지도 엽예품을 선호하는 난인들이 많지 않은 편인데다 형성 된 가격이 높아 일반 난인들은 구매를 꺼리고 있는 형상이기 때문이다.
이 수이저우 전시회에는 특별히 국제관 부스가 마련되어 한국에선 ‘(사)한국난재배자협회’에서 다양한 한국춘란 엽예품을 출품 전시하기도 했지만 전시장 장소가 시내와 동떨어져 외진데다가 주최측의 미흡한 운영으로 일반 관람객들은 물론 난인들 조차 전시장 접근이 불편할 정도로 일반 차량 통행 차단과 더불어 전시장 현장의 전반적인 편리 시설 미비로 한증막 같은 환경으로 인하여 중국 전국전 사상 가장 실패한 전시로 혹평을 받았다.
비록 전국전은 혹평을 받았지만 일부에선 난계의 활성화를 위한 노력이 이어진 가운데 12월 윈난성(云南省) 따리(大理)에선 춘검란 백중투호(白中透縞)인 '국보(國寶)' 3촉에 신아 하나 붙은 개체가 중국 런민피 1,230만 위안(당시 환율 한화로 대략 22억 1천 4백만원정도)에 거래 되어 그간 조용하던 중국난계가 흥분의 도가니 속에 빠질 정도로 화제를 불러 일으키며 2015년 대미를 장식했었다. 이 품종은 전년도에 이미 최고가 런민피 930만위안(한화로 약 16억 7천 4백만원)에 거래 되기도 한 전력을 가지고 있었던 품종으로 밝혀지기도 했는데, 많은 난인들의 관심도와 호응에 힘입은 탓인지 2016년 중국 전국전시회인 '第24届中国(大理)兰花博览会'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저명한 상인인 천샤오민(陳少敏)이 동사장(董事長, 대표이사)으로 있는 ‘远东国兰股份有限公司’ 에서 제공한 벤츠 승용차 한대를 부상품으로 받는 영광으로까지 이어졌다.
한편 ‘广东远东国兰股份有限公司’는 2015년 12월 난계 최초로 중국 증권거래소에 ‘远东国兰’ 명으로 주식을 상장하여 난계에서도 대형 사업체로 발돋움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본보기가 된 사례라 할 수 있었다.
2016년 ‘국보’에 이어 또 하나의 화제가 된 현장은 2월 4일 따리(大理)의 한 고급 호텔에서 오로지 개화한 한 화분만을 놓고 많은 난인들을 초대하여 감상회가 열렸는데 화제의 품종은 춘검란 도홍화(桃紅花)로 하화판인 '홍태양(紅太陽)'이라는 품종으로 촉당 런민피 930만 위안(현 한화로 약 18억원정도)에 거래가 되어 더욱 화제가 되기도 했다.
8. 결론(結論, conclusion)
지금까지 서술한 바와 같이 2009년부터 정체기에 들어 선 중국 난계의 분위기 속에 2013년 3월 국가주석으로 취임한 ‘시진핑(習近平)’주석의 부패척결 정책의 여파로 인하여 그간 매년 공공기관에서 선물용으로 대량의 난초가 소비되곤 했는데 이 또한 출하 통로가 막히면서 중국 난계의 불황이 가중되는데 일조(?)했음을 부인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도 필자가 운영하는 사이트의 회원들과 소통하여 보면 기존의 전통품종(문화혁명 이전 개발 된 품종)과 신노품종들의 거래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대에 와선 중국의 생활 공간도 아파트를 선호하면서 예전처럼 대형 식물보다는 작은 공간에 잘 어울릴 수 있으며, 관리하기가 용이한 작은 식물 선호로 변화하고 있는 과정 속에 예로부터 ‘난’을 고귀하고 귀하게 여겨 온 터라 고급 식물로서 대접을 받는 ‘난’이 한국의 드라마로 간접 체험을 통하여 터득한 것처럼 중국의 여러 다양한 공간마다 자리하고 있을 날이 멀지 않으리란 생각이다.
또한 각 지역의 난인들이 다각적인 활로 모색 방법을 강구는 한편 대중화를 위한 산업화를 가속시키며 대대적인 변화를 촉구하고 일부 자금력이 있는 난인들은 난 농장 규모를 대형화 추세로 확장하고 있는 단계로 접어 들고 있기에 침체기가 그리 길어지지 않을 것이란 사견이다.
다만 예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정부 차원에서 인터넷 산업 육성 정책의 결과로 인프라 구축이 급속도로 발전하여 현재는 초등학생 저학년까지 대부분 스마트 폰을 소지 할 정도로 보급화 되어 있는 상황 속에서 편리함을 추구하며 다양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도 함께 동반 성장하여 난계 역시 그간 데스크 탑을 통해 정보 교환과 소통하던 것이 이젠 언제 어느 곳에서든 스마트 폰만 소지하고 있으면 실시간으로 난계 동향이나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여 상인과 소비자가 소통은 물론 매매 역시 실시간으로 처리 할 수 있는 인프라의 폭이 넓어진 만큼 변화하는 사회 여건을 감안한 전략이 필요해진 시기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인터넷 인프라 구축 면에서 한국이 최고라고 알려져 있지만 현재 필자가 체험적으로 느끼는 바로는 오히려 중국이 더 광범위하게 발전되어 실 생활에 편리함을 추구하고 있다는 생각과 함께 ‘중국 난계의 흐름과 변화’에 대한 의견을 마무리하고 다음 주제인 ‘중국 난 전시 문화’로 넘어가 보기로 한다.
[본 문장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화훼공판장'의 지원으로 '고려대학교 생명공학부'에서 진행하는 '한국 춘란의 산업화ㆍ대중화를 위한 기초 기반 조사 및 발전방안' 연구 과제의 보고서와 '난과 생활' 2017년 1월호부터 복수 게재되는 내용으로서 타 사이트(블로그 포함)에 복사 및 인용 사용을 불허합니다]
귀한 내용 잘 읽었습니다. 그때 중국에 있었던 그 시절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 내년부터 공식 연재된다고 하니 더욱 기대가 됩니다. 또 선배님 명문을, 지명을 통해 읽을 수 있어 너무나 기쁩니다. 건강하십시요.